부고 몇 달 전, 주민센터에서 자활근로를 시작한 아저씨가 계셨습니다.한눈에 보아도 제가 손아랫사람으로 보이는데 먼저 인사해 주셨습니다.항상 바른 자세로 일하셨습니다. 맡은 일을 성심성의껏 하셨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도 맡아 해주시고 주민센터 주위를 항상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이러한 아저씨의 모습이 저를 겸손하게 하고 자세를 낮추게 합니다. 며칠 휴가를 다녀온 사이 아저씨가 출근하지 않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다른 직원은 아저씨가 일명 ‘잠수’를 탄 거 같으니 다른 자활 근로자로 바꿔야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 그럴 분이 아닙니다. 피치 못할 일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아저씨는 다른 동에 거주하고 계셨고 업무에 사용하는 시스템으로 다른 동 주민을 조회할 수 없어서 해당.. 2025. 12. 26.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토록 죽음에 대해,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이반 일리치는 죽어가며 지난날과 자신을 돌아봅니다. 고위 관료의 집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판사로 남부럽지 않게 지냈습니다.그러나 몹쓸 병에 걸리고 나니 자신이 가졌던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압니다.가족들, 동료, 친구들도 이반 일리치에게 소홀합니다. 이반 일리치가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이 보여야 살아갈 의자가 더 생깁니다.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살아갈 의지를 북돋웠습니다. 죽음이 결과이고 삶이 과정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살았느냐 묻는다면, 어떻게 죽고 싶은지 묻는다면.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진지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 이상 죽음.. 2025. 12. 19. 느슨 5년 만에 동주민센터와 왔습니다.그러고 1년이 지나갑니다. 동주민센터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각종 사회보장급여 접수 △모니터 상담 △복지사각지대 발굴 △아동행복지원사업 △후원품 관리 △제설, 수방 △선거사무 △민생회복 소비쿠폰 발급 등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이리저리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 업무 중에, 제대로 해보고 싶은 업무가 있습니다. 사례관리 입니다.사례관리에 집중하기 어렵지만, 한 가정이라도 제대로 만나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당사자 두 분을 만났습니다.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들도 두루두루 만났습니다.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하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 혼자 당사자.. 2025. 11. 22.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칠레의 아름다운 마을 이슬라 레그라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흐릅니다.평범한 마리오, 대물림으로 어부가 되기 싫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됩니다. 마리오는 네루다를 통해 시에 빠집니다.시에 눈을 뜨고 새로운 삶과 세계와 사랑을 알아갑니다. 마리오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네루다와 연대하기도 합니다.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이슬라 네그라를 떠났음에도 둘의 우정은 변함이 없습니다.마리오가 멀리 있는 네루다를 위해 마을 구석구석 소리를 녹음하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쿠데타로 네루다가 마을로 돌아오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마리오는 목숨을 걸고 네루다 곁을 지키려 합니다.마지막으로 마리오도...... 제기랄, 나도 시인이나 되었으면, 제가 시인이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잖아요.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바.. 2025. 6. 14. 소식 (지원 부결) 소식 1 얼마 전,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로 월세, 관리비, 각종 공과금이 밀린 주민분을 돕기 위해 긴급복지지원 신청하였고지원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결과를 안내했습니다.[관련글] “아쉽지만 지원하지 않는 거로 결정이 났네요.”“어떤 부분 때문에 그런지 알 수 있을까요?”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자구책이 없던 게 영향 있었어요. 이번 지원을 통해 달라지는 부분이 없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변화하려는 모습이 약해 보였나 봐요.” “그러면, 그냥 그때 일할 거라고, 취직한다고 할 걸 그랬네요. 이거 지원 안 되면…. 어쨌든 제가 해야 하지만, 어려운데. 큰일이네. 다음에 언제 다시 신청할 수 있어요?” 큰 기대 하지 않는다고 말씀했지만, 지원금이 적지 않았기에 조금의 기대는 있었을 겁.. 2025. 6. 9.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사업 실패, 은행 대출, 보험 대출, 월세, 관리비, 가스요금, 수도요금 체납.도움을 드리려고 민간 기관의 긴급지원을 신청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볼 만한 일과 방법이 있을지 여쭸습니다.딱히 없다고 합니다. 사업하며 주인, 대표 입장에만 있어 보아서 누군가 밑에 들어가 일하기 어렵다고 합니다.가지고 있는 아파트 한 채를 팔아 대출을 갚는 것은,아파트를 팔아도 부채가 남기 때문에 아파트값이 더 오르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긴급지원 배분 위원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합니다.밀린 월세를 지원해도 다음 달이 되면 다시 체납이 시작될 상황인데 당사자가 별다른 노력을 안 한다고 합니다. 아직 과거의 영광에 사는 거 같다고 합니다. 아쉽지만, 예상했.. 2025. 5. 29. 반딧불이 반딧불이가 사라진 후에도 그 빛의 궤적은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감은 눈의 두터움 어둠 속에서,그 약하디약한 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영혼처럼 언제까지고 떠돌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중 2025. 5. 21. 재회 담당하는 지역에 주민 분이 한 서비스 신청서를 써내고 가셨습니다.마침 자리에 없어서 다른 직원이 서류를 대신 받고 제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름이 낯익습니다.서비스 신청을 위해 신청서에 적힌 이름을 조회했습니다.2020년쯤으로 기억납니다. 아동학대 조사로 만났던 ○○이의 아버지입니다.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2020년 상황을 말씀드리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아동복지관 도움 많이 받았어요. 감사했어요.""○○이는 이제 중학생이겠네요? 건강하게 잘 지내죠?""말도 못 합니다. 그때 보다 더 해요. 다음 주에 법원에 가야 해요."○○이가 여전히 아버지 속을 썩이나 봅니다. 아버지는 사회보장급여제도로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이전과 다른 일이지만. 담당자로 다시 만나게 됐으니, 언제든지 .. 2025. 5. 15. 글램핑 흐르는 빗물에 맑게 씻긴 잎새들이 푸르름을 자랑한다.그저 한없이 누워 빗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좋다.아무 말 없어도 다 알 것만 같다. 10년 되고 20년이 되고 어떻게 흘러왔는지….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갈지…. 2025. 5. 10. 이전 1 2 3 4 ··· 22 다음